연명 소지가 卞氏 가에 소장된 것을 보면 변씨 가에서 수령을 압박하기 위하여 몽석동 주민들에게 聯名 정소를 요청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卞師龍이 20세로 기재한 것을 통해 변정실의 증손인 卞高迪을 1세로 하여 작성한 세계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먼저 1907년 경북 문경 대승사(大乘寺), 금룡사(金龍寺) 등이 연합하여 설립한 경흥학교(慶興學校)를 시발로 김천 직지사(直指寺)의 직명학교(直明學校, 1908), 영천 은해사(銀海寺)의 해창학교(海昌學校, 1908), 상주 남장사(南長寺)의 남명학교(南明學校, 1909), 달성 동화사(桐華寺)의 광명학교(光明學校, 1910년대 초반 추정) 등이 개설되었다. 1910년대 조선총독부에서 발간한 축척 5만분의 1 지형도 이전의 것으로 국토의 변화를 개략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소중한 자료이다. 2004)가 대표적이다. 송석환 선생이 개인적으로 발간한 책이지만 단순히 개인의 사생활과 관한 내용만 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칠곡지역의 사회, 경제, 문화 모든 부분에 관해 언급하고 있어 당시 칠곡을 이해하는데 참 좋은 자료이다. 교육, 보건관련 폴더에 한국 인물관련 사진들이 들어 있다. 예를 들어 대합면의 공동묘지이장 대장(1913), 대지면의 분묘대장(1915), 대합면의 공동묘지이장대장(1913) 등 묘지 관련 자료들이 수집되었다. 아동부 관련 사진 자료이다. 해외 여러 나라의 경제활동 사진 기록물이다.
또한 사진들은 각 나라의 자연적 특징과 자원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문화적 역사적 사건과 기념물을 담고 있다. 주로 전세계에서 미국으로 온 아이들, 다양한 가정의 모습, 건강상태 등을 담고 있는데, 모두 13개의 박스에 대전오피 장의 사진으로 구성되어 있다. 윤시영은 5월 14일 咸興에 도착하여 7월초쯤에 함흥을 떠나 영흥, 고원 등을 거쳐서 석왕사에 이르러 며칠 머물다가 귀경길에 올랐던 것으로 보인다. 최현은 선산 출신으로, 본관은 전주이며, 선조대 문과에 급제하여 부제학, 강원도 관찰사 등을 지낸 인물이다. 과거 합격도 저조하여 尹一敎가 생원시에 합격하고 尹恕敎가 문과에 급제한 이후 과거 합격자가 없다가 윤동술의 아들 윤광섬과 윤광승이 문과에 합격하면서부터 집안은 다시 활기를 띠었다. 여기서 몇 대 더 내려가서 佳巖派가 형성되었는데 崔震立은 바로 이 파의 파조가 된다. 이 문서군에 포함된 사진들은 대내외통상국(the Bureau of Foreign and Domestic Commerce)의 편집부에 의해 주간 통상 보고서에 사용되기 위해 수집되었다. 아동부(Children’s Bureau)는 상무부의 산하기관으로 1912년 4월 9일에 설립되었다. 산하기관으로 되어 있다. 이 시리즈에 모인 사진들은 기관에서 직접 촬영하거나 연방정부의 각 기관에서 촬영된 사진들을 수집한 것인데, 여러 사진사들 이름이 나열되어 있다. 이 문서군의 하위계열에는 각 나라가 수행하는 대단히 다양한 경제활동이 기록되어 있다. 한국폴더에 담긴 사진들은 대부분 한국 아이들의 사진인데 캡션은 필기체로 간단한 장소 설명 정도만이 되어 있고, 연도가 따로 기록되어 있지 않다. 이 컬렉션은 대부분 Harry S. Truman 대통령과 연관성이 있거나 트루먼 행정부에서의 그의 근무와 관련되어 있다.
자료의 접근성은 좋은 편이나 점심 시간에는 한 시간 가량 열람실을 폐쇄하는 등 일일 개방 시간이 트루먼 대통령 도서관 등과 비교해서 짧은 편이다. 군보급, 운송, 지질보고 등과 관련한 자료가 포함되어 있다. 칠원향교 소장 고문서 중 격문, 공함 등 6건은 한말의 倡義, 순절인물을 위한 院宇 건립 등과 관련된 내용이다. 아이젠하워 대통령 도서관(Dwight D. Eisenhower Presidential Library)은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의 행정 관할 하에 있는 13개 대통령 도서관 중 한 곳이며 아이젠하워 대통령 센터(Eisenhower Presidential Center)의 일부로서 캔자스주 애블린(Abilene)에 소재하고 있다. 여기 수록된 자료는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 강루리에 있는 新安書社소장 고문서이다. 아이젠하워대통령도서관의 자료는 공식 문서(각종 보고서, 비망록, 전문 등)와 편지 등 비공식문서로 구분할 수 있다. 한국 문제와 관련된 자료는 주로 아이젠하워의 육군참모총장 재직기간(1946~1948), 대통령 재직기(1953~1961)의 자료에서 찾아볼 수 있다. 방선주 박사는 1963년 미국으로 유학한 후 40여년간 미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을 출입했고, 국사편찬위원회와 함께 한국 관련 사료를 조사 및 수집하였다. 유니언신학교에 소장된 선교사들의 보고서와 개인 서신들은 한미 간의 공식 외교관계가 단절되고 미국정부가 한국문제에 직접 개입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했던 일제강점기 당시 미국인들의 한국 인식과 이해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들로 사료적 가치가 높다. 그의 문서는 한국전쟁에 대한 핵심적인 자료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 사료군은 방선주 박사가 국사편찬위원회에 개인적으로 기증한 자료들로 구성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도 영일현을 유지했다. 1732년(영조 8)에 통양포(通洋浦) 아래에 포항창(浦項倉)을 설치하고 별장(別將)을 파견하여 이 창의 곡식으로 함경도 진휼의 바탕으로 삼게 함으로써 이 일대는 함경도와 경상도를 연결하는 동해안 해로의 중심역할을 하게 되었다. 지방제도 개정에 의하여 1895년에 동래부 관하 영일군이 되었다가, 1896년의 13도제 실시로 경상북도 소속이 되었다. 2차대전기 7군 사령관으로서 유명해진 뒤, 그는 “Lightning Joe”라는 닉네임을 얻게 되었다. 그는 1949년 미육군 참모총장이 되어 1953년까지 근무했다. 미 육군지상군본부 문서이다. 주로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육해공군 합동 훈련, 전투작전 관련 기록물 등이 포함되어 있다. 충헌공파는 윤유 이후에 18세기 동안 이렇다 할 인물들을 배출하지 못하였다. 해안경비대 관련 사진 자료이다. 미 육군수송부대 관련 자료이다. 평화봉사단 사진 자료이다. 다른 사진 자료군에 비해 한국관련 사진이 많이 포함되어 있지는 않다. 공식문서는 전문 외에도 정책결정에서 나타나는 비망록과 보고 등이 포함되어 있다. 산업화의 진전으로 지역 공동체가 급속히 해체되고 있고, 냉전체제가 장기간 지속되면서 이데올로기적 제약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고, 구술 자료를 남길 수 있는 분들이 고령으로 인해 해가 갈수록 급속히 감소하고 있는 점 등이 그 주요한 원인이다. 서한, 메시지, 회의 비망록을 비롯해 1950년 여름 맥아더의 인천 상륙작전 작전, 원자 폭탄의 사용 가능성에 대한 언급, 1951년 초 유엔과 한국군의 후퇴의 가능성, 리지웨이의 유엔 사령관 전투 능력 향상을 위한 노력, 맥아더의 사령관 교체, 육군의 인종통합, 인력과 교체 문제, 전쟁포로와 퓨전협상을 포함한 전쟁의 다양한 측면을 포함한 보고서 등이 포함되어 있다.